“저는 이 나라에 발을 디딘 이래 흑인과 인디언 음악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죠. 민족의 성격과 민족성들이 음악에 담겨 있답니다. 이런 이유로 인디언들의 선율을 갖고와서 새로운 교향곡을 만들고 싶어요.” 체코 출신의 드보르작(Dvorak1841~1904)은 1891년 미국 콘서바토리의 두 번째 원장을 제안 받았다. 15,000달러의 월급은 여섯 식구의 생활비로는 큰 규모였다, 프라하 콘서바토리 월급의 25배나 된다. 그러나 드보르작을 초대한 쟈넷 마이어 터버는 드보르작이 작곡가로서 명성과 민족주의 성향으로 새로운 미국 음악을 만들어 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녀의 설득으로 결국은 드보르작은 1892년 미국행에 오른다. 사진출처,Aarts Addick카페 “실제로 저는 어떤 멜로디도 사용하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