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인물

사르비아처럼!

von3000 2018. 3. 11. 17:24
반응형

우리는 흔히 집시들에게는 자유와 방랑, 슬픔의 원초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니다. 그들에게 왜 떠도느냐고 물어봐라. 돌아오는 답은 하나다.

머물 수가 없어서,

살아남기 위해서 떠돌아 다니고 있는 거라고.

 

 

 

집시들의 음악!

폭발적인 울림. 정열, 강함, 붉은색, 그렇지만 그들의 음악은 수 천년을 머물지 못하고 떠돌아 다녔던 울분, 아니 이미 울분도 넘어버린 레드와인같은...

눈물이 흐를 수 없는 슬픔이다. 자유 분방한 집시들의 성격을 보여주듯, 곡은 느려지다가도 빨라지고, 빨라지다가도 느려진다.

게다가 연주자들조차 언제 이 곡이 끝날지 모른다. 악보가 없는 플라멩코.

집시의 음악들!

나는 그들의 음악이 좋다.

삶이 좋다(그들은 욕하겠지). 그들의 슬픔이 좋다.

 

집시들은 가난하다.

먹고 사는 것마저도 힘들다.

떠돌아 다니는 집시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직장을 다닐 수도 없고, 떠돌이다 보니 새로운 부분에 대한 배움도 갖지 못했지.

그러니 갖고 있는 손재주 등으로 날품팔이 할 수밖에는...

 

 

 

 

집시(Gypsy)’의 어원은 이집트인을 뜻하는 ‘Egyptian’이다. 영국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집시가 이집트에서 온 민족인 줄 알았다. 그렇게 집시가 된다.

그들의 언어를 연구해보니 인도 북서부 지방에서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은 스스로를 집시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로 사람을 뜻하는 (Rom)’이라 부른다.

 

사실 집시들의 출발은 인도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었을 것이다. 하층민이다 보니 정말 힘겹게 살았을 그들! 거기에다 6세기 무렵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이주하기 시작한 것이 이동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후 마케도니아에 머물다 그곳에서 점차 서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방인에 대한 배척으로 머무는 곳마다 정착민들의 무고한 희생양이 되어 나간다. 거의 모든 민족에게서.

 

 

최악의 사태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였다. 이때 유럽에 살던 집시의 3분의 2가 희생당했다. 집시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다.

이런 편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체코, 루마니아 등 유럽 곳곳에서 집시를 추방하는 탄압을 계속 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어디든 안전하지 않고, 뿌리내리기 힘들다.

어떠한 곳에도 자신이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트라우마에 휩 쌓여 있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 집시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

다른 민족과의 통혼을 하지 않고 순수 혈통을 이어간다.

이런 고립성들은 부족에 자부심으로만 볼게 아니지 않을까?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 없던 이들이 선택지가 어디 있었을까? 

조금 다른 시선의 해석으로 내놓고 싶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다보니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지만 지금 지구에는 200만~300만명 정도의 집시들이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까지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슬픔속에서...

나도 그 중 한명이지 않을까...

 

 

 

 

Andrew Atroshenko(안드로 아트로센코, 위의 작품모두) 1965, 러시아 '파브로스키'에서 태어났으며, 집시의 그림을 그린다. 집시의 작품들을 통해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인 느낌, 거친 유화의 붓터치가 집시들의 운명을 닮았다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그는 사실, 집시들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슬픔과 몰입을 그릴뿐이다.

 

 

댓글과 공감은 저에겐 항상 힘이 됩니다.  꾸벅!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