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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인물 65

천국과 지옥

천국과 지옥 고향가는 길 옆, 한라산 성판악 까마귀1 단테가 말했지. 천국가는 길이 있다고. 지옥에서 출발하여 연옥을 거쳐야만 갈수 있는 게 천국이야. 이젠 천국이 없어 멋진 인간이 사라지던 100년전부터 그런데 나보고 천국 갈 짓 하라는 거야? 텅텅 비어 었는대도... 내가 갈 곳은 내 안에 어둠, 썩을 그 고독들이 물안개 얼싸안고 춤출 수 있는 그 곳이겠지. 모두 다 있는 그 곳에서 흐르는 듯 본능도 모르게 뿜어져 나오는 지옥의 춤 춰보고 싶다. 고향가는 길 옆, 한라산 성판악 까마귀2 댓글과 공감은 저에겐 항상 힘이 됩니다. 꾸벅!

저기/인물 2018.03.24

또 다시 나하고 둘이서만 논쟁을 벌이고 잇네....

서로 알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흐미~~~ 어쩌다 보니 또 내가 1번이 됐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까? 죽어서 하늘로 올라간 뒤 별이 된 너의 친구별과 눈을 맞춰보지 않고서 어떻게 별이 될 수 있을까? 어제 내린 빗줄기의 물방울 갯수를 헤아려 보며 땅속 밑으로 사라져간 친구들이 보고싶어 철봉 밑 모래바닥에 그리움을 그려보지 않았다면, 눈물이 전하는 통곡을 어떻게 알까? 어스름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개미들과의 평행선을 그리며 걸어가다 잠깐 소피볼라고 대열 이탈한 개미를 밟아 죽인 그들의 숫자를 떠올려 보지 않고 타인의 인생을 거론할 수 있을까? 술을 많이 마신 날, 그런 날이 아니어도 위액마저 달달 긁어내어 토해내는 누런 무의식 소리에 귀 기울여 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대의 마음을 그릴 수 있을까?..

저기/인물 2018.03.24

쓰 레 기

사진출처,오만과편견 중에서 Guitarist F 쓰레기 by, F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엇다. 이상태에 놓여진지 꽤 된같 다. 누군가 있어주길 바랫던것 같다. 누군가 없어진걸 생각해보앗다. 근데 왜 하염없이눈물만 날까 하필 왜 이 흐름에 멈춰버린걸까. 달라질 건 없었다 그들은 외면했다 내맘을 보지못한채 사랑도 해보았다. 절망에 빠져봤다. 남은건 작은 소년뿐이었다. 난 기억되길 바래고있었다 이 세상속에 내이름을 새기고 싶었다 쉽지않은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너무 많은것들을 한번에 봤다. 근데 왜 난 길을 헤매고 있을까 하필왜내생각은 한결 같을까 달라질 건 없었다 그들은 외면했다 내맘을 보지 못한채. 사랑도 해보았다. 절망에 빠져봤다. 남은건 작은 소년뿐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같은 생각일까 곁에 있었다면 공..

저기/인물 2018.03.22

타인의 고통..우리는 어쩌면 불완전한 남을 통해 나를 본다.

"수십 년에 걸쳐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뒤섞인 채 신물 날 정도로 살아온 삶들이다. 나는 ‘글쓰기’의 본질은 ‘독자에 대한 경의’에 귀착한다고 생각한다. 실천적으로는 마음을 다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치다 다츠루라는 일본의 교육운동가는 우리가 글을 쓸 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Print Out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글을 쓰는 동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발견하는 것이라고, 이는 글을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인츠 코헛의 대상관계이론, 뮤지컬 우리는 어쩌면 불완전한 남을 통해 나를 본다. 정말 섬뜩한 말이다. 남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첫째, 나의 완성도가 조금 높아질 확률은 더 많아지는 것이고, 나의 동정심과 측은지심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가 알아서 다가온 것이다. ..

저기/인물 2018.03.20

니체와 바그너

"니체는 9세 때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고, 매우 어린 나이에 벌써 쇼팽과 슈만의 영향을 받은 환상곡과 마주르카 몇 곡을 작곡했다 고등학생 때는 이미 음악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놓았다. 레퀴엠과 미사곡, 성탄 오라토리오를 습작했고, 또한 당시로선 참신했던 교향곡의 초안을 쓰기도 했다. 14세에는 매우 복잡한 구성의 피아노곡 를 작곡했고, 15곡에 달하는 가곡도 작곡하였다. 사진출처,생생블로그 이 당시 니체와 바그너 사이의 이야기. 니체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자, 가만히 듣고 있던 바그너는 "썩 나쁘지 않은 곡이군. 누가 작곡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니체는 "이거 브람스씨가 작곡한 신곡인데요?"라고 말한 것. 당시 요하네스 브람스는 바그너와 대단히 사이가 나쁜 라이벌 관계였다. 당연히 바그너는 대..

저기/인물 2018.03.19

혼돈은 해석되지 않는 질서다. 영화 애너미

그 날 이후, 그의 여자까지 갖고 싶어졌다 끌릴수록 위험한 두 남자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치밀하고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의 진수! 인간의 욕망과 불안정한 내면이 만들어 낸 도플갱어 누구나 상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한번쯤 그 사람과 바꾸어 살아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껴보곤 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훔치는 스릴은 어떨지 순수한 호기심이다. 그래서 등장한 존재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거나 현재 자신과 반대의 성격을 갈망한 나머지, 스스로 자신의 환영을 만들어내 보게 된다는 도플갱어이다. 감독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심도 깊게 파고들었으며, 그 한 가운데에는 잠재된 성적 욕망이 있다고 본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철저히 ‘쾌락원칙’을 추구하는 또 다른 자아가 자신을 억..

저기/인물 2018.03.17

오늘도 좋은 음악들이 탄생하는 순간 사라져간다

무거운 억눌림들이 세상 시름만큼이나 무겁게 이 밤에 찾아오면 도심의 주점들은 서서히 불을 밝힌다. 어두운 조명 속으로... 느낌마저 드는 그곳으로... 삶에 지친 군상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세상 고통 하나에 술 한 잔, 작은 기쁨 하나에 또 한 잔. 누군가가 말했던가, 술을 마신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라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저 멀리 떠날 준비를 하는 거라고... 사진출처,Uza,동쪽바다카페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노래가 너무나 좋기에 쓰러질 때까지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사람들, 그저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만이 더 없이 즐겁다는 사람들. 그러나 무대의 무명 가수들은 아득하기 만한 스타의 꿈. 그러나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니 많이도 꼬꾸라졌다. 아무도 모르게....ㅠㅠ 세상은 ..

저기/인물 2018.03.17

어제는 비를 맞았다. 봄비...신중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왔다. 비 흐느끼듯 내리고 또 언젠가 한번은 만났던 빗줄기인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출처, 음악MR 비가 그리웠나 보다. 비에 가려진 눈물을 흩날렸나 보다. 방금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비를 맞고 걸었다. 흠뻑 모자가 나를 다가린듯 맘이 갸냘플때 ..이미 난 터져버렸다. 내편은 이세상에 아무도 없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오래된 친구들만 흩어져 세상 곳곳에서 역사를 그린다. 나를 오라하며 여기 내리는 비들이 그곳에도 올까? 아니면 봄비 끝나면 겨울로 돌아가는 걸까? 사진출처, 음악MR , 봄 비 작사곡, 신중현 노래, 이정화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면 봄비에 젖어서 길을 길으면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

저기/인물 2018.03.16

스티븐 호킹, 이제 우주로 갔다. 나 어떡하지ㅠ ㅠ

“우주의 기본적 법칙 중 하나는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함이 없다면 당신도 나도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사진출처,스티븐 호킹 박사 (사진=유튜브 캡쳐) 20세기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에 뒤를 이어 천재 물리학자의 계보를 이었던 스티븐호킹박사는, '호킹복사'라는 이론을 1976년에 발표했다. 블랙홀에 대한 이론으로 밖으로 나가는 양의 에너지와 블랙홀로 유입되는 음의 에너지는 균형을 이루게 되며, 이 음의 에너지가 블랙홀에 들어오면 블랙홀의 질량이 줄어들어 블랙홀 자체도 증발된다고 하는 이론이라고 한다... 어렵죠... 하지만, 물리학계에서는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론이다,.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 숙여서 발을 보지 말라.” 사진,네이버지식백과 ,1..

저기/인물 2018.03.15

인디언 애상곡-드보르작

“저는 이 나라에 발을 디딘 이래 흑인과 인디언 음악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죠. 민족의 성격과 민족성들이 음악에 담겨 있답니다. 이런 이유로 인디언들의 선율을 갖고와서 새로운 교향곡을 만들고 싶어요.” 체코 출신의 드보르작(Dvorak1841~1904)은 1891년 미국 콘서바토리의 두 번째 원장을 제안 받았다. 15,000달러의 월급은 여섯 식구의 생활비로는 큰 규모였다, 프라하 콘서바토리 월급의 25배나 된다. 그러나 드보르작을 초대한 쟈넷 마이어 터버는 드보르작이 작곡가로서 명성과 민족주의 성향으로 새로운 미국 음악을 만들어 가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녀의 설득으로 결국은 드보르작은 1892년 미국행에 오른다. 사진출처,Aarts Addick카페 “실제로 저는 어떤 멜로디도 사용하지 않았..

저기/인물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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