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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빅토르 하라, 살바도르 아옌데대통령

von3000 2018. 2. 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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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911.

화창한 봄날이었다. 칠레 국영 라디오에서는 지금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립니다는 엉터리 일기예보를 반복한다. 이 멘트는 쿠데타 작전 개시를 알리는 암호였다 

1975년작 프랑스 영화. 칠레를 배경으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을 무너뜨리고 군사 독재자로 등판하는 과정을 다룬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다. 최근 도보여행으로, 순례길로 인기를 끄는 스페인의 산티아고가 아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는 40년 전, 잊을 수 없는 얼굴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피노체트가 집권한 해가 1973년이고 이 영화가 나온 게 1975년이니 프랑스는 진짜 발빠르게 피노체트를 비난하며 나선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 헬비오 소토는 프랑스로 망명한 칠레인이다.

 

                   스페인어로 된 영화포스터

 

영화의 제목은 쿠데타 당시 라디오에서 송출하던 '오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에서 따왔다. 광주항쟁의 화려한 휴가랑 비슷하다.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는 산티아고에서 비가 온다는 건 곧 겨울이 시작된다는 신호다. 다시 추운 겨울속으로 칠레는 허물어진다. 전두환이 5공 청문회에 출석하기 하루 전인 19891230일 늦은 밤, KBS'토요명화'로 이 영화를 방영했다. 라틴아메리카 혁명사에 오래도록 남을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내보낸 것이다. 이 토요명화 하나로 KBS9시뉴스의 정각 아홉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 전두환 대통령각하께서는...” ‘. 뉴스의 지탄에서 벗어날(?) 수 있을 아주 작은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만큼 획기적이었다.

 

칠레 아옌데정부의 국유화 조치로 구리광산을 빼앗긴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는 전투기로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여기서도 미국이 등장한다. 죽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신이 있다면 미국은 가장 비참한 나라가 될 것이다. 민주적인 선거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을 열었던 아옌데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다가 칠레 만세! 민중 만세를 외치며 삶을 마감했다. 그 후 17년간 이어진 피노체트의 군사 독재 기간 동안 칠레에서는 최소 3천명이 납치, 살해됐고, 28천명의 고문피해자가 생겨났다.

 

 

 

     연설하는 살바도르 아옌데대통령

 

이것이 내가 국민 여러분께 연설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나는 사임하지 않겠습니다.....나는 국민의 충성에 대해서 내 목숨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 나는 여러분께 단언합니다. 우리가 수천 수만 칠레인들의 양심속에 뿌린 씨앗들은 결코 완전히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입니다.......어떤 범죄 행위나 강권도 사회적인 변화와 진보를 가로막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의 편입니다. 역사란 민중이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조안이 쓴 빅토르 하라 중에서)

이는 아엔데 대통령의 마지막 라디오 연설이 된다. 연설 도중 대통령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군가가 퍼져 나온 것이다.

아옌데 대통령은 직접 총을 들고 탱크와 비행기에 맞서 싸우다 대통령궁 모네다에서 최후를 맞는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우는 아옌데 대통령(실제사진)

 

 

이 영화와 함께 또 한 권의 책. ‘빅토르 하라’. 나는 이 책을 긴 호흡으로 봤다.

자전적 전기여서 글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게 다가왔다. 체 게바라의 친구이기도 한 빅토르 하라는 수 천명의 아옌데 지지자들과 함께 잡혀가 3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칠레 민중문화 운동을 함께한 영국 출신의 아내 조안 하라는 탈출해 칠레의 민주주의와 피노체트 독재정권의 실상을 알리고, 1983년 영국에서 '빅토르 하라'를 출간했다. 빅토르는 41년의 짧은 삶을 살면서 현실을 조명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노래하며, 민족성을 일깨우고자 노력한 칠레 문화 르네상스의 음유시인이자, 혁명가였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민요에서 정체성과 민족 정신을 고취하자는 문화운동!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는 슬로건으로 '누에바 칸시온' 참여하여 비올레타 파라, 아타우알파 유팡키, 파블로 네루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굉장한 선전선동가이기도 한 빅토르!

쿠테타 당시 피노체트 휘하의 군인들은 빅토르가 다시는 기타를 칠 수 없게 손가락 마디마디, 손목을 다 뭉게 놓은 후 처참히 살해했다.

 

  군중앞에서 노래하는 빅토르

 

어떤 낯선 남자가 찾아왔다. 나쁜 사람 같지가 않아서 1층에서 그를 맞이 하였다..... 그는 저는 빅토르 하라와 같이 활동한 청년당원입니다. 죄송합니다. 빅토르 하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드리러 왔습니다.....시체실 안에서 우리 동지 중에 한 명이 찾아냈구요. 저랑 같이 가서 빅토르 하라를 데리고 와야 합니다. 죽은 지 48시간이 지나서 이제 곧 군인들이 다른 시체들과 함께 아무데나 묻어 버릴 겁니다”(빅토르 하라 중에서)

 

 

선    언(manifesto)

 

빅토르 하라

 

내가 노래를 하는 것은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도,

내 목소리를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오,

내 정직한 기타가 하는 말을 대신 하기 위함이라네.

내 기타의 마음은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이오.

내 기타는 비둘기와 같이 날아간다네,

끝없이, 마치 성수(聖水)가 뿌려지는 것처럼

용감한 이들과 죽어가는 이들을 축복하면서,

그렇게 내 노래는 할 일을 찾았다네.

비올레타 파라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네.

 

 

  빅토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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