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Cafe Von

태풍이 지나가고 난 후...

von3000 2018. 9. 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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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놓쳐버린 풍선처럼 날아가 버리듯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온 동네를 윽박질렀던 매미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밤에는 가을이 왔다고 귀뚜라미 소리가 제법 들려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침잠 속으로 살며시 숨어 버리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을 싫어합니다.
이런 날은 우울이 몰려와
질문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근원적인 보다 근원적인...
답도 없고 끝도 없는 질문들입니다.
답이 없으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열감이 오르고
편두통이 저 멀리서 걸어옵니다.
지금까지 놓쳐버린 질문들.
외면해 버린 질문들.
성질 급한 고추잠자리가 비에 젖어 흐느낍니다.


태풍 '솔릭'오는 날. 늦은 밤.
지리산 계곡 위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산장에서
술에 취한 어떤 사람이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니 얼굴을 잊어버렸다."
"아이고 형님! 거기 죽을라고 갔습니까?"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
"아이고 하나님! 죽을라고 거기 내려왔습니까? ㅋㅋ"
"낼 아침에 전화해라. 안 받으면 난 죽은 거다. 흐흐흐 술맛 좋다."
, 모레가 환갑인데…….
쪽팔리는 건 나입니다.
이 형님은 신경증이 뼈 속 깊숙하게 들어가 있는 완전 미친 사람입니다.

어떨 때는 이런 광기들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그 확실한 집중력이…….
끝내줍니다.
이 불공평함에 대한 하늘의 거친 처사에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천체 물리학 전공한 친구가 있어요. 저 먼 나라에…….
저녁노을이 하염없이 아름다운 건
하늘의 대기 오염이 심각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요.
가장 더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워진다고…….
잘 씻지도 않았던 원시시대가 그렇고요.
날마다 더러운 얼굴로 들어오는
동네 꼬마 녀석들의 환한 웃음이 그렇습니다.
과학자답습니다.
그러면서도 곱다고
노을 사진을 띄워놓습니다.
여기도 완전 미친 사람입니다.

남아 있는 내 삶이 이들과 얼추 비슷하게라도
가면 좋겠습니다.
무엇인가에
완전 미친 사람들이 나의 롤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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