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눈물“ 김진만 PD는 ’아마존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충격적인 관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마존 어디선가 항상 산불이 나있다 . 브라질이 아마존을 개발한다고 불을 내고, 그 장소를 농장과 목장으로 지어서 소와 콩을 키우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 도로가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다. 도로를 내주겠다고 시작하면서 그곳의 환경을 파괴하고 개발하고 있는 현실이이다. 현재 원주민들 중에 도시에 예속되어 사는 부족도 많다. 청년들이 도시의 맛을 알아버렸다.
근대 역사를 보더라도 식민지 국가에서 처음 하는 일은 도로망, 철도망을 연결하는 것이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군대를 파견하기 쉬운 것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그들의 정신을 퍼트리는 것이다.
사진출처,아마존의 눈물중에서
지구가 해 왔던 것, 만들어 왔던 것들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이 아니다.
애초에 지구가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놓은 것들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물론 개발을 통해 발전할 수 있지만
다만 개발을 시작할 때는 지구의 추구하는 그 처음의 의도를 가장 근접하게 접근해야 한다.
“조예족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6시간을 걸어서 낚시하는 장소에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작 작은 몇 마리만 잡은 채 다시 6시간을 되돌아간다고 해요. 그래도 그 부족은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네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자연을 파괴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라고 김진만 PD는 말한다.
‘아마존의 눈물’ 촬영은 조예족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되었습니다. 조예족은 일반인이 만날 수 없어요. 방송사라고 해도 흔히 오는 기회는 아니었죠. 7-8년에 한 번 브라질의 정부가 열어줄까 말까 하는 기회였습니다. 만나고 싶다고 해서 가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승인 후에도 건강검진, 여러 가지 서류 절차 등 몇 달의 준비 기간을 거쳐야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데, 그런 기회가 생겼으니까 반드시 그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인터뷰출처,1%살롱)
이보다도 10여 년 전 ‘아나콘다의 눈물’ 이라는 환경교육 뮤지컬이 있었다.
아마존을 배경으로 자연생태 파과가 인간의 파괴임을 알린다.
‘아나콘다’라는 부족의 소녀와 친구들이 부족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순수한 분투를 그린 작품이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미래적인 것이다’를 말하고자 한다.
하여튼 지구가 멸망해도 다 알지 못할 것이 아마존 밀림일 것이며, 수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과 현지인들이 아마존강을 둘러싼 밀림과 그 속에 사는 원주민 부족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사진출처,door님블로그
이보다 훨씬 먼저1908년 벨기에 태생인 문학인류학자이자 철학교수였던 레비스트로스가 움직인다. 박사 논문인 ‘친족의 기본구조’는 그 당시 학계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 후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의 상파울루 대학에 취임하면서 부터 아마존을 처음 접한다. 이 때 방학과 휴가 등을 통해 처음 아마존강에 대한 관심은 문화인류학자로서, 구조주의 사상가로서 또 다른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책 중간에 족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 가족 또는 전채이거나 하나의 무리가 무엇을 욕구할 때 그 호소의 대상이 바로 ‘족장’이다. 그러므로 족장의 가장 큰 덕목은 ‘관대함'이다.
‘적과 싸울 때도 가장 선두에 서서 싸운다‘ 몽테뉴는 이 이야기를 그의 수상록에 옮겨 적으며 그 원주민들의 자신 만만한 정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표현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카두베오족’ '보로로족‘ '남비콰라족’ '투피 카와이브족‘들의 생활을 통해 인간의 원류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이 내용을 적은 ’슬픈 열대‘라는 책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내려 했었다.
‘구조주의’라는 말은 처음으로 사용했지만 정작 본인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란 우리가 생각지 못한 ‘조화’에 대한 탐구이며, 어떤 대상들 가운데 내재하고 있는 발견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난 산업화로 인한 매우 ‘動’적인 우리보다 ‘靜’적인 아마존의 원주민들의 관심을 갖는 것이다”
젊었을때의 아마존에서 레비스트로스, 사진출처,door님블로그
아주 자그마한 일을 하더라도, ‘기획’이니, 매뉴얼이니, 시스템이니, 체계니 하는 말들이 정말 지겨워 진다. 많은 사람들이 위 단어들에 짜증이 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구조주의는 사라지게 된다. 이 글을 쓰는 평범한 내가 위 단어들을 깨부수고 싶다는 생각, 분노까지 쳐 올라오는 걸 보면, Post구조주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다.
한국을 찾아 안동 하회마을도 다녀온 레비스트로스는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에서 기술의 성취는 아주 고통스런 정신적 희생 하에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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