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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파키스탄 카슈미르 분쟁의 원인

예쁜 von3000 2019. 2. 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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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도 전투기 두 대가 파키스탄군의 공격으로 추락했다.

1명은 포로로 잡혔다.

발단은 지난 14일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다.

이 자살 폭탄 테러로 40여명이 사망했는데, 사망자 대다수가 인도 경찰이었다.

 

인도는 이에 대한 응징으로 전투기 12대를 동원해 파키스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카슈미르 반군 자이쉬--무함마드(JeM) 캠프(스스로 테러 배후로 밝힘)를 공습한 것이다.

이 공습으로 26일 새벽 테러 거점으로 지목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 발라콧 마을 부근의 무장 조직 캠프는 불바다가 됐으며, 

무장조직원 300여명이 숨졌다.

 

인도가 파키스탄을 직접 공습한 것은 1971년 이후 48년만이다.



인도가 파키스탄 영토를 침입하여 공습하자,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핵폭탄을 관할하는 [국가지휘국]을 소집했다.

또한 파키스탄군도 언제든지 시간과 장소를 정해 대응에 나서겠다며, 인도를 압박 하고 있다.

반면 선거 유세장으로 향한 모디 인도 총리는 주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오는 총선을 앞둔 모디 총리는 며칠 전부터 카슈미르 테러 공격에 대한 강경 대응 압박을 받아왔다.

 

  출처,파키스탄군이 격추한 인도 공군 전투기. © AFP=뉴스1

 

인도가 파키스탄을 공습한지 단 하루 만에 파키스탄이 보복에 나서면서 양국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카슈미르를 사이에 둔 인도나 파키스탄의 공습과 테러는 더 이상의 확전은 없지 않을까!

두 나라 모두 핵전쟁은 남아시아 전체의 몰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분쟁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총선을 앞 둔 인도]가 이를 활용할 것이며,

이에 대응하는 파키스탄 또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대응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바람 앞에 촛불로 서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민들은…….

 

[더 이상 을 가운데 놓고 장난하지 말자!]

 

출처,인도 북서부 잠무 카슈미르에 있는 달 호수. 한 카슈미르 주민이 26일 배를 타고 호수를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 이야기를 꺼내려면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야 겠다.

11C초 이슬람의 인도 침입과 통치는 800년가량 지속되었다.

소수 이슬람 지배층은 다수 힌두교도들과 큰 갈등 없이 함께 살았다.

힌두와 이슬람에 틈새가 생긴 것은 영국이 나타난 이후였다.

1858년 영국의 인도통치와 함께 이슬람의 위상을 크게 위축시켰다.

힌두교도들은 재빠르게 영어와 서구교육을 배우고 새 정권에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다.



위기를 절감한 이슬람은 대학을 설립하고 이슬람 엘리트를 키우며,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힌두 엘리트가 주축인 인도 국민회의가 창설되자, 곧바로 이슬람 연맹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인도를 식민지로 갖고 있던 영국하여튼 제국주의의 농간이 지금의 슬픔까지 이어오고 있다.

영국은 세력이 강해지는 힌두 국민회의의 대항카드로 이슬람 연맹이 필요했고 은근하게 지원정책을 폈다.

인도의 분열은 영국에겐 엄청난 이익이다. 마치 '메기와 청어'처럼.......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격이니…….]


1930년대 후반이 되자 영국이 인도를 떠날 가능성이 짙어졌다.

이슬람은 장래 힌두정권의 설립과 그 아래서 2급 국민이 될 자신들의 처지를 전망하고 이슬람 국가를 창건하였다.

1946년 영국의 철수가 시작되면서 양쪽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오랫동안 키운 불신과 두려움 속에서 수십만 명이 학살되고 500여만 명의 피난민이 짐을 꾸렸다.

결국은 이슬람 인구가 다수인 서북지역과 동부지역은 파키스탄이 인도로부터 분리해 독립 국가를 세우게 된다.

그러나 그 당시 이슬람이 다수인 북서부 카슈미르 지방은

힌두 통치자가 인도 연방에 합류를 희망해 지금까지 계속되는 인도 파키스탄 분쟁의 초점이 된 것이다.

두 나라는 이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48, 65, 71년 세 차례나 전쟁을 벌였다.

또한 인도가 파키스탄으로부터 자치운동을 펴고 있던 동파키스탄을 지원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한 사건도

파키스탄에게는 깊은 상처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구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이 낳은 가장  마음 아픈 곳중에 하나이며,

여기까지 오게 된 원인도 카슈미르 지역의 사는 사람들이 아닌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서 시작된 것이다.

[독립 이후 파키스탄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인도는 소련과 협약을 체결해 냉전 기간 동안 적대국으로 지냈다.]

 

카슈미르 지역 인구의 절대다수(77%)를 차지하는 이슬람 측은 파키스탄에 귀속되고자

파키스탄 정부군의 지원 아래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카슈미르 지역의 힌두교 영주인 마하라자가 인도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였다.

그에 따라 1947년부터 지금까지 카슈미르는 핵폭탄이 터질 가장 위험한 곳이 되어 버렸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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