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내고향 제주 이야기...

한라산 성판악 까마귀들...

von3000 2018. 11. 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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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서의 하루

 

아침 비행기타고
고향으로 간다
저어기 낼모레 오십줄에 들어서는
주먹깨나 쓰고다닌 양반이 웃고 있다
배운게 운전뿐이라고
택시 몰다
덤프트럭 몰다
버스 몰다
몸 성한곳 없다
난 웃지 못한다
얼른 뒷자석에 몸을 꾸겨버렸다


"형! 성판악으로 간다"    

 "......."

성판악에선 까마귀떼들이 날보고 비웃을 것이다. 어린 날도 그랬던 것처럼..

성판악 까마귀들과 악수를 하고 나서야 제주가 된다.


동백나무길을 건너면 고향집이다
팔순이 되는 내 엄마
무릎이 아프다
몇년 전 양쪽 다 수술했다
멀리서 아들을 보고는
하얗게 웃으며
아장아장 걸어온다
난 웃지 못한다 
시선을 돌려버린다

엄마에게 나는
밥한끼도 못먹고 배곯고 다니는
아들이다
오늘 다섯끼는 족히 먹어야
오래된 이를 보이며
온 얼굴의 주름까지
하얗게 웃을게다
난 웃지 못한다
담배피러 등 돌린다

이른 저녁밥 끝에
차가 밀려서 비행기 못탄다고
세시간 전부터 난리다
빨리가서 줄서서 기다리라고
그 섬에 차가 많아본들
어느새 스티로폴 박스안에
세상  그 어떤것보다 맛있다며
먹을 것 잔뜩 싸놓고 웃는다
난 웃지 못한다
엄마의 아기같이 환한
웃음의 무게를 들 힘이 없어
도저히 웃지 못하겠다

삼십년 넘게 떠나버린
슬퍼지는 섬
난 그리움보다
서러움의 그림자가 더 길다
구름 저편의 허무다
선악의 경계다
세상에 온갖 벌들에게 쏘일까봐
센 바닷바람에 온몸을  흔드는 유채꽃이다
힘없이 허우적대는 억새풀이다
성판악 깊숙히 숨어 들어간 까마귀다
하늘나라로 끌려간 아버지가 그랬다
이 작은 섬에 대고는 웃지 못한다
웃을 수가 없다

마지막 비행기
조그만 창에 비쳐진
고향의 불빛을 아쉬워하며
섬 주위를 한바퀴를 돈다
시커먼 한라산이
아장아장  걸어온다
섬이 점이  되는 순간
긴 한숨과 함께 난 몰락한다
이십년을 살았던 집 앞  동백도
다 늙어버린 구슬잣밤나무도
그 산도
그 섬도
그 바다도
아장아장 걸어오는
엄마의 흔들림처럼
어릴적 모든 기억들도 억압되어간다
흔들리는건  파도만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것 모두
염세의 늪에 허우적 젖어들었다

그 섬에 가면
정말
웃음 웃는 법을 잊어버린다

-------- Kim Von

성판악

성판악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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