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봄이다.
꽃샘추위도 있는 둥 마는 둥, 성질 급한 봄이 바위처럼 도착해 있었다.
나도 몰래.
집을 나서면 꽃들이 학교 수업을 끝내고 운동장으로 달려 나오는 아이들처럼
서로의 위용을 어필하기 위한 생존의 욕구들이 등장한다.
봄의 꽃이다.
매화부터 시작인가 했더니 금세 개나리와 진달래도 피어난다.
자기만의 특기들을 앞세워 피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이 정말 신비스럽다.
동시에 피어나 같은 꿈을 향하지만 똑같은 방법을 쓰지 않는다.
자기만의 주 무기가 따로 있다.
색깔과 향기다.
비슷한 것은 없다. 다 다른 것들이고 다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
처음이어서 매화가 아름답고 진달래의 화려함.
혼자서는 빛을 발하기엔 조명이 조금 약하다 싶었는지 개나리는 군집생활을 한다.
그래서 꽃 이름 앞에 붙는 ‘개’라는 글자는 그런 쓰임이었을까?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꽃이 있다.
‘동백이다.’
한 겨울에 웅장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겨울을 다 물리치고
춘삼월 봄이 되면 사라지는 빛남의 자리를 넘기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동백!
난 어릴 때부터 동백과 함께 컸다.
제주도 신흥리 동백마을이 내 고향이다.
집안의 제일 큰 형님 집을 가려면 고목처럼 키가 큰 300년 쯤 되는 동백 군락을 지나야 한다. 제사 때도 늘 무서웠던 그 길이다.
혹시 낮에 큰 형님 집에 심부름이라도 갈라치면 그 군락지는 어둡고 습하여 어느 과거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것처럼 음침했다.
정말 큰 동백나무 고목 군락이다.
마을이 탄생하면서 심어진 동백들이다.
4.3의 아픔과 흔적들을 다 목격하여 그 처참했던 모습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동백은 다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색깔도 그렇게 피로 물들였나 보다.
동백꽃이 하늘로 향해 있는 것을 난 본 적이 없다.
동백나무는 잎들로 그 안을 잘 볼 수가 없다.
너무 잎들로 꽁꽁 숨겨 놓았다.
[자신의 사상을 숨겨야만 했던 시절을 겪어서 더욱 그렇다.]
어렸을 때는 그 안에서만 생활하는 새의 지저귐이 요란스러웠는데.
‘동박새다.’
천적으로 부터도 자기를 보호 할 수 있는 성(城)이다.
그래서 더 까 불고 있다.
홍역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내가 천식이 생겼다는 어머니는 머리에 바른다는 동백기름을 하루에 한 숟가락씩 줬다.
한약을 먹는 거 보다 더 먹기 싫었던 동백기름은 화장품의 연료로도 사용되어진다.
내 고향은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2리이다.
광산김씨 동족 촌이지만 다른 성씨들에게도 개방적이다.
동백 마을이다.
귤 농사를 주업으로 하지만 마을 공동으로 동백나무를 계속 심어가고 있다.
설촌 이래 300년을 동백과 함께 해왔다.
지금의 동백 심기는 다음 300년을 준비하는 거룩한 작업이다.
떠올리면 아픔밖에 없어 잠깐씩 놓치고 살고 싶었던 나였다.
남원읍과 표선면 사이에 끼여 있어 가장 가난한 동네였다.
바다로부터 2.5km 떨어진 중산간 마을!
지금은 그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여기에도 4.3의 아픔은 어김없이 서려있다.
보통 중산간이면 바다에서 4~5km 거리지만 그 중간 정도의 지점이니 여기서도 저기서도 총질에
마을 전체가 바닷가 마을로 소개 되기도 하고
다시 마을을 세우는 데 많이 애를 먹었다.
제주의 어느 곳이든 4.3은 아픔으로, 두려움으로, 공포스런 고통으로 진행중이다.
사진출처,와이즈맨블로그, 300년된 동백 고목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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