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Cafe Von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von3000 2019. 2. 2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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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전화가 왔다.

콩닥콩닥 오래도 사귄 사람이다.

가까운 곳에 살았으면 벌써 싸우고 안 봤을 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우린 먼 곳에 살고 있으니 서로의 옷에 묻은 검정이 안 보여서 좋다.

 

 

손님 맞을 준비도 안했는데……. 어떻게 맞이 해야 하는 지도 다 잊어버렸다.

옛날, 오줌 누는 법을 잊어버렸듯이.

서울에 있는 형인데, 20년을 동종업종에 일하다 보니 1년에 한 두 번은 꼬박꼬박 만나게 된다.

형이지만 내가 함부로도 대했던 적도 있고, 형이 나한테 고집피울 때도 있었다.

20년 만에 형과 나는 일 이야기 말고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나야 동생이라고 살짝살짝 힘든 얘기들을 비치긴 했어도

형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쪽 팔리는 상황이다.

 

나만 아픈 게 아님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형도 많이 울었네. 혼자서.

난 그것도 모르게 징징거렸고. 허허.

인간이 100살까지 산다던데, 천수를 누린다고 봤을 때 그 중 최소 10년은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시련을 주는 것 같다.

 

형이 나한테 말한다.

이건 섭리야. 섭리! 인정하자고. 우리!”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붙잡는 것. 오래전에 놓아 버려야 할 것은 놓아줘야 한다.

류시화님의 산문집 중에서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형이 나에게 절절하게 이야기 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형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내일이면 또 흐트러질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우가 몇 번 있었으니……. 그래도 계속 또 해야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쪽팔려서.

 

관계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들.

정답이 없는.

그렇지만 항상 대답을 요구 받는.

 

관계에서

상처가 나에게로 몰려오지만 호흡하는 방법을 잠깐 까먹었다.

발버둥치는 것도 잊어버렸다.

죽지 않을 만큼의 연타를 맞고도 모른다. 카운터 날리는 법을…….

집에 오자마자

멍 때리며 누웠다.

한참을 멀뚱하게 있다가 폰을 들었다.

그리곤

지금 당장에 일이 아닌, 보고 싶지 않은, 의무감으로 밥 먹어야 하는 이들의 전화번호를 다 지웠다.

가슴속에 분노와 화로 낙인처럼 멍울을 새겨 넣은 그 이름들도 다 지워버렸다.

 

 

내일의 내가 기대된다. 흐흐!

늘 짓누르던 무언지도 모를 어깨의 무게감!

누가 목마 탄 것 같아.(아이고 무서버라)

눕기만 하면 당겨오는 종아리 속 다리 뼈. 침대속의 불안들!

의지 할 곳을 찾으러 길을 나서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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